2015년 9월 27일 일요일

책에는 유효기간이 없어요

, 썩지 않아요
 
전 오늘 중고 책을 샀습니다. 유머에 관한 책인데 한 권은 5, 한 권은 1년 된 책입니다. 시간이 다소 지난 듯한데도 전혀 읽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례로 든 농담들중 들어본 것들이 많은 것 말고는 농담을 어떻게 하고, 유머란 무엇이며 왜 사람이 유머러스해야 하는 지등 저자가 말하고자 한 본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책은 품절이어서 사지는 못할지언정, 유효기간이 지나서 사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모든 소비재에는 제품의 사용 기한이 있습니다. 음식은 보통 1-2주를 못가고, 냉동고에 넣으면 1년은 간다고 하지만 오래된 음식은 아무래도 찝찝하지요. 과일은 마르기 전에 먹어야 하고, 야채는 시들기 전에 요리해야 하고, 과자같은 가공식품도 다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 보관된다는 통조림도 2-3년이면 끝입니다. 음식뿐인가요? 옷도 유행이 한 시즌, 6개월이면 끝이고, 100만원을 오르내리는 스마트 폰도 2년만 쓰면 오래되었다고 바꾸라고 합니다. 어쨌든 사람하고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은 다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호르몬이 나오는 180일동안이라고 했던가요?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의라는 단어를 썼지요. 예외없는 법칙은 없으니까요. 그건 바로 책입니다. 책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거의 모든 것은 새로 나온 것이 대접을 받지만, 예외적인 것은 또 책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온 세월의 검증을 거친 책입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공자왈, 맹자왈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삶의 좋은 사례로 인용되고, 성경 책이 여전히 잘 팔리고, ‘죄와 벌같은 책들이 고전으로 인정받습니다. 가장 시사적인 경제.경영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초만되면 ‘2015년 대 예측등등과 같은 다음 해에 대한 전망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연초 연말에는 사람들이 많이 읽다가 어느 순간 뚝 끊깁니다. 그렇다고 그 책들의 가치가 전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 책들의 전망이 맞았는 지, 틀렸는 지를 돌아보고, 왜 맞았는 지, 왜 틀렸는 지를 검증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책에는 왜 유효기간이 없을까요? 전 사람의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썩지 않거든요. 100년이 지나가도, 천 년이 지나가도 책의 내용은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음식들과는 달리 변하지 않습니다. 옷처럼 사람의 생각에도 유행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유행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생각은 과거대로 중요했고, 때로는 과거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사상이 그 때 썼던 책으로 인하여 새롭게 조명되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기계처럼 오래 되었다고 성능이 저하되지도 않습니다. 5년이 지난 유머 책이 여전히 재미있지요.
 
그래서 저는 책은 좀 지난 중고 책도 잘 삽니다. 한 마디로 잡식성이지요. 새 책 헌 책 가리지 않고 사고, 인문, 사회, 과학 가리지 않습니다. 그냥 책방에 갔다가 내키는 책이 보이면 삽니다. 술먹고 술깨려고 책방가고, 약속 시간이 남으면 책방가서 어슬렁거리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할 때는 책방가서 관련 서적을 일단 사고 봅니다. 별로 골라서 사는 편도 아닙니다. 음식은 제가 이상하게 생긴 것,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은 잘 먹지 않는 편입니다. 편식을 하지요. 그런데 책은 잡식성입니다. 일단 삽니다. 그냥 충동구매합니다. 마구 사는 편이지요. 예를 들면 무역 강의를 하면서 영문 계약서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하면 그 주제에 대한 책을 마구 삽니다. 어떤 분은 한권을 사서 그 책의 내용을 여러 번 읽으며 곱씹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 그렇지 않아요. 이 책 저 책 사서 쭈욱 훑어보면서 내용을 파악하고, 다른 책과의 다른 점을 정리하는 편이지요. 그래야 저도 생각이 잘 정리되더라고요. 전혀 경제적인 독서법은 아니지요. 주머니 사정보다는 조금 무리하는 편이지요. 그럼 그 책들을 다 보냐고요?
, 거의 그런 편입니다.
~~ 거의 그렇다? 그럼 사놓고 일지 않은 책도 있다는 말이네요?
, 30 40권정도. 읽을 거에요. 언젠가는. 책은 썩지도 않고, 유효기간도 없어요. 그래서 전 걱정하지 않아요.
적당히 책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물론 적당한게 좋지요. 하지만 제가 지금 지나치게 책 소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난 13년간 1700여권을 읽었는 데 그 중에서 30-40권정도는 생길 수 있는 오차지요. 그리고 아직 제 책꽃이에 잘 있습니다. 변하지 않고. 남들은 100만원하는 가방, 1억하는 자동차도 턱턱 사는 데 까짓것 15000원하는 책정도는 마구 사도 됩니다. 돈많은 사람들이야 가방으로 사치하고, 옷으로 사치하고, 차로 사치하며 살고, 저는 책으로 사치하면 사는 겁니다. 남들이 하는 사치를 저도 좀 하고 삽니다. 남들이 호화로운 명품을 사가면서 자랑질할 때, 저는 책갈피가 두꺼운 멋있는 양장본도 거침없이 사버립니다. 그리고 남들은 삼시세끼 진수성찬 먹을 때, 저는 좋은 책을 마음의 반찬삼아 라면먹습니다. 남들이 호사스러운 비단침대에 누워 황금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두꺼운 양장본을 베개삼아 잠을 잡니다. 남들이 명품 구두와 차를 자랑할 때, 저는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많이 샀다고 자랑합니다. 사치의 묘미는 자랑질입니다. 저도 읽은 책 자랑, 쓴 책 자랑을 좀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 이제는 제가 책을 가지고 나가면 남들이 좀 알아주는 편입니다. 사치 명품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는 , 명품 브랜드가 많으시군요, 부럽습니다라고 한다면, 저에게는 , 책을 많이 사고 읽고 쓰시는 군요, 부럽습니다라고 한다. 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게 하나쯤 있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그리고 남들이 좋은 옷장에 멋진 옷을 걸쳐둘 때 나는 부족한 책장 여기저기에 마구 세워놓고 누여놓고 쌓아놓는다. 남들은 그렇게 모셔둔 옷을 가끔 입어볼 때 나는 가끔 꺼내서 라면 냄비 밑받침으로 쓰고 바퀴벌레 잡을 때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것은 그러면서 그 책들의 제목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바퀴벌레야, 다른 책도 아닌 무역실무 책에 깔려 죽음을 영광으로 알아라!’ 라는 축복을 내릴 수있지요. 그마저 없으면 그저 누워 빈둥거리면 책의 제목을 천천히 하나씩 읽어갑니다. 그럼 그 안을 일일이 들여다 보지 않아도, 책들이 저에게 자기를 소개합니다. ‘저는요, 떨지마라, 떨게하라입니다.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법을 가르려 드립니다‘. ‘카오스라고 합니다, 왜 인생을 대충 열심히 살아도 되는 지를 물리학적으로 알려드립니다’. ‘세계가 일본된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본처럼 안될려면 너무 아껴도 안됩니다. 특히 책값까지 아끼면 진짜 일본처럼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제목들을 읽다보면 내가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구나하는 안심이 되지요. 책 사다보니 이런 재미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마구마구 산 책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구마구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아직까지 나의 성은을 받지 못한 30-40권의 책들에게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렇게 쳐박아 놓을려면 왜 나를 데리고 왔냐!’는 원망이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여전히 책사러 책방에 갑니다. 사두면 언젠가 읽는다는 확신이 있어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책은 변하지 않아요. 감자처럼 썩지도 김치나 콩나물처럼 쉬지도 않아요. 옷처럼 유행이 변해서 입지 못하게 되는 일도 없어요. 사두면 언젠가는 읽을 날이 있겠지요. 그리고 사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전 책은 마구마구 삽니다. 그리고 쌓아둡니다.
 
책에는 밀봉된 통조림처럼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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