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기위하여 읽습니다
언젠가 친구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세상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운이 있는 데, 난 아직 그 운은 못 만난 건지, 아니면 이미 흘러갔는 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그래도 세상은 자기만 열심히하면 못할 게 없다고 하면서, 나보고 미신을 믿는다고 타박을 주더군요. 하지만 난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오히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더 이상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50여년이나 살아오면서 자기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할 수있다고 믿을 수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혼은 무엇인가? 혼은 꿈이고 비전이며 신념이다. 하는 일에 목적의식, 소명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창은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혼이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창은 거두는 것이다. 창은 실행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다. 통은 바로 혼을 통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목적, 세상의 수많은 조직과 만남을 제쳐두고 굳이 ‘우리’가 함께 한솥밥을 먹는 이유를 소통하는 것이다.” (이지훈의 혼창통에서)
혼.창.통, 그거 다 나한테 있는 건데.
난 사업을 즐겨서 하고,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일을 하고 있고, 나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하고 통하는 데, 왜 나는 아직 성공을 못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시기가 나에게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성공은 하겠지만, 영웅은 시대를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책을 보다가 '근데, 왜 난 아직 이 모양이지?‘ 하는 질문이 퍼뜩 들었습니다. 위 세 가지가 다 있고,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게다가 내 생각에 시간도 충분히 지났는 데, 어째서 하늘의 나에게 ’성공‘이라는 단어를 주지 않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이 성공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면 난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을 사장으로서 지냈으니 벌써 몇 번이고 성공했어야하고, 이제는 성공이 나의 습관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난 그러지 못했어요. 왜지요? ‘1만시간의 법칙’. 이 말은 적어도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1만시간정도는 투자해야 한다는 말로 알아들었었읍니다. 물론 1만시간을 전심전력으로 노력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는 거에요. 그 것은 타고난 천재도 환경이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주어진 환경이나 기회에서 적어도 1만시간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1만시간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1만시간은 하루 세시간 * 10년. 빌게이츠(MS), 빌조이(SUN), 비틀즈 등등 도 정상에 오르기 이전에 이런 시간을 통해 진정한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었다고 했지요. 그래, 그 사람들이야 1만시간이면 충분했어?
그럼 나는? 머리는 그들의 반정도 된다치면 2만시간이면 되겠네. 제 경우를 계산해볼까요?
하루 10시간 * 20년 * 365일 = 73,000시간. 그런데 전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겹지요, 질기지요. 제가 생각해도 저 정말 질긴 놈입니다. 하기사 이런 이야기하면 남들도 그래요. 정말 이제껏 처음의 사업자 등록증을 유지하고 있는 게 용하다고. 그 시간이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성공하거나 망하거나 결론이 진작에 났다고.
이런 이야기하면 나를 위로하느라고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대기만성 (大器晩成, 큰 그릇일수록 오래 걸린다)’이라느니, ‘하느님은 크게 쓰실 사람은 오래동안 훈련시키신다’는 둥의 말들이요. 다 좋은 말인데 7.3만시간은 너무 오래 걸린 것아닐까요? 전 저를 알거든요. 그렇게 큰 그릇아니에요. 저 이제는 고만 고생했으면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사실 경영을 하다보면, 살다보면 참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워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전혀 감도 오지 않는데, 돈을 들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자칫하면 적지 않은 돈이 날라가고, 잘해야 본전일 때를 접하면, 단 하루만이라도 미리 알면 도움이 될 텐데 하는 때도 많습니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금이나 회사운영계획을 세워야 하는 경영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직장인보다 점술가를 많이 찾는다고 하지요.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영하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직장인에 비하여 훨씬 자주있고, 그로 인한 부담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기사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유망한 직종으로 점술가가 꼽혔다고 적힌 기사도 있었으니,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은 세계 어느 나라나 차이가 없지요. 그런데 그 운에 대하여 설명을 해놓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연준혁과 한상복이 지은 ‘보이지 않는 차이’라는 책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이 애매모호한 것을 답답해하며 참지 못한다. 애매한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확실하게 통제하기 위해 분석하고 계획하고, 목표부터 수립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때로는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것인지, 아니면 저것인지’ 분명하게 매듭짓자며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은, 성급하게 가능, 불가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재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인지 아니면 저것인지’ 섣부르게 선택을 하고나면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의외의 행운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조용히 성공을 일궈내고 그것을 지켜간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있다고 본다. 차이는 ‘가능성 항아리의 뚜껑을 언제나 열어놓고 있느냐’에서 갈린다.” 그러니까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의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하면서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올거라는 믿음을 놓치말라는 이야기에요. 그야말로 ‘열심히 살되 될대로 대라’라는 마음을 가져라는 뜻이지요.
운(運)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운(運) = 천천히 걸어갈 착(辶) + 덮을 멱(冖) + 수레, 바퀴 차(車)
= 수레위에 싣고 덮은 뒤(그래서알 수없다) 천천히 이동해간다.
‘오래 열심히 끌고 니다 보면 덮어져 있는 운이 하나둘 벗겨져서 보인다’. 그래서 ‘운’은 포기하는 자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사업은 오래도록 할 수있게 버텨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차이’에서도 결론은 이렇습니다.
“좋은 해석 앞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불운과 악운이라도 꼬리를 내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또한 “선인들은 지금 운이 나쁘다면, 과거의 악업을 청산해주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전의 빚을 갚기 위해 지금의 시련이 있는 것이란 해석이지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이 어떻건, 과거가 어땟 건간에 ‘자기 운명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좋은 해석’이 나올 수있습니다.
지금 운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계속 그렇게 본인의 운명을 해석하세요.
지금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가? 그럼 앞으로는 다르게 본인의 운명을 해석하세요.
해석하는 방법이요?
그건 책을 읽고 나의 운명을 해석하는 방법을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느 책에서도 본인의 운명을 포기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전 책을 제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책을 읽습니다.
세상을 제 인생에 ‘我田引水(아전인수), 堅强附會(견강부회)’하기 위하여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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