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하면 내 삶을 검증하게 됩니다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제대로 맞는 것일까요?
어느 회사에 독서에 관한 강의를 갔다가 누가 나에게 ‘자기는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읽지 못한다. 책을 읽기 위한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대답했던 것이 ‘절실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절실함 때문인 게 맞습니다. 물질적 풍부함에 대한 절실함, 행복한 삶에 대한 절실함. 그 절실함들이 쉽게 잊혀지는 게 싫습니다. 그래서 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정리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중의 하나가 13년동안 쓴 독서목록이고, 그걸 바탕으로 한 여러 권의 책입니다. 이건 어쩌면 나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편집증으로 불릴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못 견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절실함은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옳은 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나로서는 또 다른 실패를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 항상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지를 글로 정리를 합니다. 그건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하다보면 금방 나의 머리는 다른 것들로 가득차버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게 되는 게 싫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지가 그저 저 하늘의 뜬 구름처럼 흘러가는 게 도무지 싫습니다. 좀 더 확실하고 좀 더 명확하게, 그러면서도 일의 순서나 중요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는 구멍가게 사장으로서는 상당히 큰 타격을 받습니다. 장사란, 그것도 구멍가게의 사장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언제든지 해결책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도 한번에 하나씩 일이 터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여러 개의 사건이 터집니다. 좋은 일은 좋은 일을 끌어오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을 끌어오지요. 평상시에 정리되지 않으면 일이 터져도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난 항상 메모를 하고, 그 메모를 수시로 정리하고 지난 일은 지우고 새로운 생긴 일은 다른 일과 중복되지 않도록 하고 일정도 미리 맞추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퍼뜩 지나가는 아이디어도 흘러가지 않도록 손에는 항상 볼펜이 있습니다. 요즘 좋아하는 볼펜은 친구가 손으로 만들어준 나무로 된 수제 볼펜입니다. 딱 손에 잡히고 무게도 적당하여 까닥 까닥대고 손을 돌리기에도 좋아 손장난감이기도 하지요. 그 볼펜으로 종이에 휘갈겨 쓰거나, 자판으로 컴퓨터를 두들기도 있으면 저는 제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독후감을 쓸 때는 제가 좋은 책을 읽었는 지,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인지를 다시 봅니다. 남에게 권할 만한 책이 아니라면 독후감을 쓰되 남들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올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는 우선 책방을 가서 책을 찾아본 다음,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그 사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지요. 아니면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봅니다. 남에게 투자를 받아야 할 때는 마케팅 계획서를 만듭니다. 맨발신발에 대한 마케팅 계획서는 아마 수십번을 고치고 잠재 투자자에게 수십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때마다 상대방에게 맞게 고친다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투자를 받으려고 고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도 받고, 지난 번 만났던 투자자를 돌아보며 왜 실패했는 지를 감안하며 적습니다. 고등학교 동기회 총무를 하면서는 모임을 할 때는 친구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왜 모여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같이 깨닫자고 이메일이나 안내문을 썼습니다. 책을 쓸 때는 책이 될수록이면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면서 내가 사업을 하면서 분명한 방향성을 찾아보려고 썼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형식의 글을 쓰던 간에 언제나 글을 읽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글은 내가 온전히 책임을 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맞는 지, 내가 남들에게 나를 드러낼만큼 잘 그리고 제대로 살고 있는 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김지영이 쓴 ‘호모스크리벤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라’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글쓰기가 자기 완결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만큼 많은 책임과 가능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글을 쓰기위해서는 글을 쓰는 목적과 글을 읽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기본 전제는 차치하더라도 글의 제목에서부터 문단의 구성과 문장의 흐름, 표현의 선택, 심지어 분량에 이르기까지 전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 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블로그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일단 블로그는 개인이라는 게 전제됩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글을 잘쓰건, 못쓰건 남들이 뭐라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가 쓴 글을 우연히 검색을 통해서건, 일부러 찾아와서건 제 글을 읽습니다. 글이 허접하고 내용이 부실해도 블로그는 그런가보다 하겠지요. 신문에 나는 것처럼 프로들이 쓴 것과 비교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대신 저도 막 쓰지는 않아요. 어쨌든 하루 몇 백명이 와서 읽는 데, 그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신경을 써가면서 씁니다.
특히 제 글에는 제 사업과 인생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글을 쓸 때마다 ‘난 정말 제대로 살아온 거야?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에 써도 되? 남들이 날 비웃지 않을까? 내 인생이 흐트러져 있는 지?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글의 주제에서 너무 벗어난 것은 아닌가? 내 글에서 어느 정도의 품격은 유지하고 있는 지’를 끊임없이 돌아봅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때로는 내가 내 인생의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 컨설팅을 한다는 것과 책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것같습니다. 컨설팅은 자기도 잘 모르면서 컨설팅을 받는 사람과 함께 생각하며 해결책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책쓰기도 나도 잘 모르면서 그 주제에 대하여 독자와 함께 생각하며 방향성을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작업 모두 다 사업이거나 인생의 복잡하고 애매모호함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진짜 문제를 찾아내서 어떻게 하면 잘 풀어갈 지를 알아내고, 이를 실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정말 나를 독자입장에서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 흥에 겨워서 마구 휘갈리며 쓰다가 다시 볼 때는 내가 아닌 제 3자인 독자가 되어 ‘이 글을 왜 읽을까? 읽어서 느끼는 게 뭘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이 것 맞아?’라는 의문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처음 내 흥에 겨워 쓴 글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문구들이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내 인생이 그런 거지요. 세상에 태어나서 엄청난 일들을 할 줄 알았더니 열심히 쓴 글들에는 불쌍하고 힘들고 속 터지는 글들만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니?’라는 자조가 나오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럼 제 안의 또 다른 내가 다독여줍니다.
‘야, 야, 재화야, 그러지 말고 다시 써봐, 너 그렇게 쓰면 남들이 욕해요. 배가 불러서 별 소리 다한다고. 너만큼 많은 것을 누린 사람도 별로 없어. 씨~잘데 없이 지껄이지 말고 제대로 다시 써봐!’ 듣고 보면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 그럼 전 휘갈겨 쓴 글을 다시 손봅니다. 그럼 내 안의 내가 칭찬해줍니다. ‘그래, 그렇게 쓰란 말야, 짜샤~~ 징징거리지 말고’.
이렇게 글쓰기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의미있는 일입니다.
여러 분도 내 안에 있는 나에게 컨설팅을 받아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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