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1일 월요일

과학의 종말을 읽고

발전을 다시 생각하고 싶을 때 -> 과학의 종말
 
얼마 전에 이세돌 바둑 9단과 구글의 슈퍼컴퓨터 알파고의 대결이 있었다. 드디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하찮은 일을 하고, 새로 남겨진 시간에 보다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일을 하게 되어, 인간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지금도 버거운 데 얼마나 더 발전해야지? 정말 인간의 발전은 무한할까?
 
세계화의 종말, 과학의 종말, 신분의 종말, 빈곤의 종말, 종교의 종말, 성장의 종말, 진화의 종말, 유로화의 종말, 종말 일기 Z, 권력의 종말
 
남들이 나를 보기에는 꽤나 낙천적이고 긍정의 화신이라고 하는 데도 내가 읽은 책 중에 종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많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 데, 유독 인간의 무한한 발전을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인간은 생겨난 이래 끊임없이 발전하고, 언제나 장애물과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왔으니,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의 과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생활의 영역을 지구 밖으로까지 넓혔다는 자부심이 많다. 나도 그 말을 믿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는 과학의 발전은 유한하고, 따라서 인간의 발전은 유한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그 자체도 그 것이 진보함에 따라 자신의 힘에 제약을 가하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어떤 물질, 심지어 정보조차도 빛의 속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한계를 설정한다. 양자역학은 미시 영역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이 항상 불확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카오스 이론은 양자적 불확실성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많은 현상들이 예견 불가능함을 확인해주고 있다. ....... 그리고 진화 생물학은 우리가 자연의 심오한 비밀을 헤친다는 고상한 목표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단지 번식을 위하여 자연 선택을 통해서 설계된 동물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다. ...... 만약에 우리가 과학을 믿는다면, 우리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시대가 이미 지났을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과학이 과학을 억압한다는 말이다. 물론 과학만이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한 나라의 쇠퇴는 언제가 최고의 시점에서 갑자기 온다. 로마, 몽고, 스페인, 일본처럼.
 
그런데 과학의 한정적 발전을 확신하게 하는 한 마디가 있다. “과학에 지워지는 한계는 바로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인간이 무한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의 확실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자원이 유한한 데 어떻게 인간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까? ~ 지구를 떠나서 우주로 나가 더 많은 자원을 구하면 된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 그럴까? 뉴톤이 사과나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데 들어간 연구비는 얼마일까? 지금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자 하는 발견을 지원하려면 지구 전체 국가의 예산을 몽땅 털어 넣어도 모자란다. 1993년 미국 의회가 초전도 초거대 입자가속기 계획을 중단시켰다. 소유주의 비밀을 깊은 영역으로 들어갈 만한 역사적 연구이고, 제작에 들어가는 총 비용도 불과 8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천문학이 우주의 끝을 보았고, 양자 역학이 미시 세계의 끝단을 보았고, 지리학은 더 이상 새로운 발견을 할 땅덩어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게 과학의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10년 전에 사서 두 번 읽은 책을 다시 꺼내보는 것은 정말 지금까지의 발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앞으로 인류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학등 사회과학자들은 과거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거의 포기했는데, 과학자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공지능이 지구 상 인간의 모든 사고 능력을 넘어설 때가 올 것이라는 예언도 있는 시점에서 어디까지 발전해야 하는 지도 이제는 돌아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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