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0일 목요일

좋은 글을 읽으면 삶을 긍정하게 된다

좋은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삶을 긍정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좋은 시절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산다. 그런데 자신과 삶을 긍정하지 않으면 그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면 세상이 재미없어진다. 그래서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성공과 행복한 삶의 지렛대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긍정은 삶을 자칫 위험으로 빠뜨린다. 합리적이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 좋은 방법이 좋은 글을 읽으면 된다.
 
꽤 오래전에 나왔고 아직도 잘 팔리는 책이 있고, 그에 대한 패러디를 한 책이 두 권이 있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삶을 대하는 3가지 비슷하면서 아주 다른 책이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
미로 속에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꼬마인간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치즈가 있는 C창고에 있는 치즈를 먹고살았다. 넉넉했던 치즈에 만족하며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치즈가 사라졌다. 두 마리의 생쥐는 즉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났지만, 꼬마인간인 Hem과 Huh는 떠나기를 망설였다. 결국 Hem은 남고 Huh는 C창고를 떠나 고생 끝에 새로운 창고를 찾아낸다. 진작에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났던 두 마리의 생쥐는 벌써 그 곳에서 훨씬 더 많고 맛있는 치즈를 즐기고 있었다. Huh는 치즈를 못 찾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결국 자신도 새로운 치즈창고를 찾아냈음에 기뻐한다. 자신의 친구인 Hem도 어서 절망적인 C창고에서 나와 새로운 창고로 오기를 기대한다.
 
누가 나의 치즈를 잘랐어?(who cut my cheese?)
미로속에 두 마리 생쥐와 두명의 꼬마인간이 살고 있었다. 두 꼬마인간은 살벌한 생쥐와 같이 치즈창고 D에 있는 치즈를 먹고산다. 어느 날 갑자기 치즈가 창고에서 모두 사라졌다. 두 마리의 생쥐는 즉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난다. 두 꼬마인간 카버와 덕은 치즈창고 D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업을 해보려고 하지만, CheeseDepotD.com은 이미 누군가가 선점해버렸고, 컴퓨터는 동영상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없었다. 결국 카버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고, 덕은 여전히 남는다. 고생 끝에 치즈 창고G를 찾는다. 카버는 치즈를 독차지하기 위하여 이미 창고G에서 치즈를 즐기고 있던 두 마리 생쥐에게 창고D의 치즈가 사라진 것이 모두 덕의 탓이라고 하면서, 유인한다. 하지만 덕은 카버에게 자신들은 사악한 자들의 실험대상일 뿐이었다고 절규하면서 죽어간다. 카버는 덕의 시체를 두 생쥐에게 던져주고, 이들이 시체를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을 때 소지하고 있던 치즈나이프로 이 둘을 처치한다. 덕은 모든 치즈를 독차지한 것에 대해 의기양양하는 데, 다음 순간 미로의 천정이 열리면서 고무장갑을 낀 거대한 손이 내려와 카버를 들어낸다.
 
치즈, 내 것만들기 (Idon't want anymore cheese - I just want out of trap)
미로 속에 두 마리의 생쥐와 두명의 꼬마인간이 살고있었다. 이들은 치즈창고에 있는 치즈를 먹고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치즈가 창고에서 모두 사라졌다. 두 마리의 생쥐는 즉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난다. 두 꼬마인간 하이와 호는 치즈창고에서 기다리다가, 호는 새로운 치즈나라를 떠나지만, 하이는 치즈창고에서 ‘치즈의 신’에게 이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한다. 갖은 고생 끝에 호는 마침내 치즈천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호가 치즈에 접근하는 순간, 엄청난 수의 생쥐떼가 호의 등뒤에서 물밀듯이 다가와, 호가 그렇게 기대하던 치즈를 모두 갉아먹어치운다. 이 모든 생쥐들 역시 각자의 방법대로 치즈를 찾아헤맸고, 호와 마찬가지로 치즈를 찾아낸 것이다. 문제는 호는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심껏 치즈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생쥐들은 남을 모방하거나, 미모를 이용하거나 하는 등,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호는 이런 생쥐들에게 화가 나있는 데, 갑자기 커다란 고양이가 나타나 생쥐들을 해치운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호의 친구인 하이가 조종하고 있었다. 하이는 ‘치즈의 신’으로부터 충성심을 인정받아 치즈를 다시 공급받았고, 미로에서 찾아낸 돈으로 치즈의 신(대학 실험실에서 쥐꼬리만큼 월급을 받고 있다)을 매수해서, 고양이를 빌려서 친구인 ‘호’를 구하러 나선 것이다.
 
맨 처음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나왔고, 그 후에 나머지 두권이 패러디로 나왔다. 세권의 책이 가정하는 상황은 모두 같다. 미로에 사는 두 마리의 생쥐와 두명의 꼬마인간이 즐겨먹던 치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생쥐는 재빨리 상황에 적응하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선다. 두 명의 꼬마 인간중 한명은 남고, 한명은 시간의 지체 끝에 치즈를 찾아 나서고, 결국에는 훨씬 더 맛있고, 다양한 치즈가 있는 창고를 찾아낸다. 원작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잘랐을까?’는 한정된 치즈를 독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경쟁심과 교활함이 남들과 선한 협력을 어렵게 만들고, 또한 이 모든 상황은 기득권층이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치즈, 내 것만들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치즈를 찾는 것은 아니며, 치열한 경쟁 때문에 찾아낸 치즈를 즐기만한 여유를 찾을 수도 없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옮겼을까?’는 결과물들을 주인공들이 공유하는 해피엔딩인데 비하여, ‘...잘랐을까?’는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하다. 이 세권의 내용을 보면 원작은 상호 협력적인데 비하여, 패러디작은 상호 적대적이다. 그것도 아주 살벌하게. 사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회사생활이나,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경영자나 남을 이기지 않고는 내 것을 취할 수없다는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하다. 문제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데 있다. 회사원은 경영자의 철면피함을 탓할 수있고,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의 철저한 경비절감 대책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 지 생각해보자. 아무도 그런 상황을 고의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1-2명의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적응해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의 범위도 한정되어질 뿐이다. ‘...옮겼을까?’는 이처럼 상황은 애초부터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하는 데 비하여, 나머지 두 개의 패러디작은 누군가가 상황을 사전에 설정해놓고, 끝없이 인간을 농락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생활의 하위 단계에 있는 조직이나 사람은 결코 그 단계를 넘어설 수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착취당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잘랐을까?’는 아주 미시적인 어느 조직에 국한해서 경영자가 모든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가정을 말한 것이고, ‘치즈 내 것 만들기’는 끝없이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의 승자도 결국은 그 과실을 오래 즐길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옮겼을까?’는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조직도 잘 적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예외는 거의 없다. (예외없는 법칙은 없으니까)
 
패러디 작품은 현실성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를 거부하고 있다. 왜? 아무리 노력한 들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허무함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으니까? 뿐만 아니라, 패러디 작품들은 내가 무엇을 이루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 아니라, 남을 먼저 탓하게 한다. 비록 우리가 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패러디된 것처럼 비합리성이 우리를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원작과 패러디 작을 비교했을 때, 역시 독자들에게 원작을 권할 수밖에 없다. 그 것은 원작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원작을 선택했고, 여전히 잘 팔리고 있지만, 나머지 살벌하고 피튀기는 패러디 작품들은 더 이상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희망을 보기를 원한다.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좋은 책, 좋은 글들은 99.9%가 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결론으로 끝난다. 그런 책들과 글들을 읽다보면 삶의 자세가 긍정적이 되고, 지금은 조금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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