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하는 이유
- 디지털시대에는 글로 소통한다
이제는 말로 남들과 의견을 나누고 친밀감을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 문자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구나 글을 써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SK텔레콤이 LTE와 3(G)세대 이동통신 이용자가 음성통화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요금제를 내놓았다. 타사와 달리 유선전화와도 무제한 통화할 수 있도록 전격 개방했다. 또 이동통신 3사는 그동안 제한을 걸었던 모바일인터넷전화를 모든 요금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풀었다. ..... 이로써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 이제 음성 통화는 사실상 기본 제공되는 서비스가 됐다. ...... 미래창조과학부는 소비자들이 이동통신을 이용할 때 무선 인터넷의 사용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가계 통신비를 크게 낮출 수 있는 데이터 요금제 도입을 놓고 이통사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다.” (한국일보, 5.20)
누구나 쓰는 스마트폰과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 컴퓨터를 통하여 사람들은 웃고, 울고, 소리친다. 1년에 한두번 만나서 얼굴을 보고 친근감을 나누는 친구보다 오히려 매일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는 친구가 더 친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디지털해지니 인간 관계도 디지털해졌다. 아직도 가끔은 ‘난 그런게 싫어, 그리고 나의 프라이버시가 퍼져나가는 게 싫어!’하면 카톡도, 블로그도, 페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게 정답일까? 정답여부를 떠나서 그렇게 남과 소통하지 않아도 살 수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다. 좋든 싫든 간에 선택권이 없다. 산골에서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을 팔려면 카톡이나 문자를 해야 하는 시대이다. 수시로 농산물 시대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언제 팔겠다는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원래 소통의 대표적인 수단인 핸드폰도 원래는 전화기능이 주된 목적이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 것도 핸드폰이 나오고 한 참 뒤에 활성화된 기능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전화기능은 뒷 전이고 인터넷으로 문자와 그림을 주고 받는 것, 심지어는 영화를 내려받는 일도 척척 해낸다. 오죽하면 통신사에서 음성 통화요금은 얼마든지 하게 하고 그 부수적인 기능이었던 데이터를 주고 받는 요금을 위주로 했을까?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아나로그적 감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디지털을 통한 매개체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소셜네트워킹이라는 다양한 수단이 나왔다. 블록, 카톡, 페이스북등등. 그리고 우리는 이 수단들을 통하여 친구가 쓴 글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표시하고, 내 의견을 말하며 소통한다. 이 모든 수단이 글로 이루어진다.
소셜네트워킹이라고 해서 공허한 글자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디지털적인 모임을 매개체로 하여 아날로그적 모임이 더 활발해지기도 한다. 내가 운영하는 무역무작정따라하기 카페는 여러 가지 행사의 내용을 공지로 올리면 회원들은 그 글을 보고 참석여부를 알려준다.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정모는 물론이고, 아무 때나 가까운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수시로 하는 번개모임도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때로는 회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전시회가 있으면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번개를 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친구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달에 한번하는 등산모임도 공지사항은 문자와 이메일을 통하여 날라온다. 내가 하는 무역 강의도 매 회수마다 밴드를 만들어 강의 보조물을 밴드에 올리고 과제물도 알려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밴드가 그대로 남아 동창회 역할도 한다. 카나다에 이민가있는 형과 근처에서 살고 있는 누나와도 밴드를 만들어 수시로 소식을 전하며 가족의 정을 나눈다. 멀리 카나다에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SNS들이 없다면 오프라인 모임은 지금보다 덜 다닐 지도 모른다. 쉽게 소식을 전하니 친근감이 있다. 이웃 사촌이 별게 아니다. 이제는 친한 친구와도 통화하기 보다는 문자나 카톡을 하거나 SNS를 통하여 문자로 이야기하다가 정 필요하다 싶을 때 전화를 건다. 지금은 인터넷 이웃사촌들과 더 자주 모이는 때이다. 문자를 통한 잡담이 아니고 해서 꼭 한국 사람끼리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서 외국에서 사는 페북친구 한 두사람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중2 막내 녀석도 인터넷 게임을 할 때 루마니아,러시아 친구들과 문자로 이야기 나누면 게임한다. 나도 바이어들과 페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해외 거래처와 SNS를 통한 소통은 생각보다 친근감을 준다. 그의 페북을 보면서 그의 일상을 알게 되고,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안부도 묻는다. 아들네미가 손자를 데리고 왔고, 딸네미가 낳은 자식이 2살이 되었고, 이번 주말에는 손자들을 봐주어야 한다는 핀란드 할아버지가 내 바이어이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려는 것도 좋지만, 일과 생활이 하나가 되도 좋은 점이 많다. 그리고 그들과의 주된 소통 수단은 글이다.
나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때로는 그냥 쓰는 재미를 즐기기 위하여, 때로는 책을 내기 위하여. 책을 쓰는 분야는 3가지이다. 무역에 대하여, 사장론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읽은 책들에 관하여. 글을 쓰는 과정이 엄청 편해졌다. 편지지, 원고지, 공책에 써서 책꽃이나 책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무겁던 글뭉치들이 이제는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어디서나 볼 수있다. 고치기도 쉽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내 글이 남들에게 읽혀질 기회가 많아졌다. 나는 글을 쓰면 보통 2-3군데 포스팅을 한다. 네이버를 주로 하지만 어느 순간 네이버의 컴퓨터가 해킹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만일을 위하여, 그리고 또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하여 두 군데 이상의 사이버 장소에 올린다. 실제로 내가 썼던 두 개 언론사의 블로그가 언론사의 정책에 의하여 사라지는 바람에 무려 150만명 정도와 소통했던 기록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지금은 네이버블로그가 메인이 되었다. 책의 원고도 출판하기 전에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은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에 링크시킨다. 그럼 사람들이 그 글을 읽는다. 때로는 덧글을 달기도 하고, 내 글에 반박을 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고칠 점을 찾아내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든 수시로 다시 글을 볼 수있어 좋다. 이건 순전히 디지털시대에 내가 갖게된 혜택이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난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아니면 내가 언감생심 글이나 썼겟고, 책을 10권이나 냈겠으며 수많은 친구들과 사귈 수나 있었을까?
글을 통하여 친구를 연락하지 않겠다면, 글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귀지 않겠다면, 소셜네트워킹을 하지 않겠다면 분명 그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고 남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해꼬지를 하기 힘들 것이다. 그대신 그의 인간관계의 범위는 매우 좁아질 것 또한 자명하다. 누가 ‘이제 프라이버시는 포기하시죠, 아무리 숨어도 치면 나옵니다. 차라리 잘 적응하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다. ‘검색되지 않는 자, 존재하지 않는다’. 취직을 하려고 입사 지원서를 쓰려면 현재하고 있는 SNS를 쓰라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이 어떤지를 알고 싶은 거다. 블로그는 사적인 공간이지만, 다른 사람이 읽을 수있음이 감안된 공개된 공간이다. 이제 평소에 내가 쓴 글은 공간에 남아 나를 검증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검증할 수단이 없다면 다른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반대로 보면 나의 좋은 면을 남들이 알 수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여 준다고 생각하면 디지털 글쓰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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