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7일 목요일

글을 쉽게 쓰려면 남의 비판도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쉽게 쓰는 방법
- 남이 뭐랄까 겁내지 말자
 
 
글을 쓰는 데 사람들이 가장 겁내는 것은 멋있게 못쓰는 것과 내 글을 가지고 남들이 뭐라 할까봐 겁내서이다. 그런데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조금 뻔뻔하게 살면 된다. 틀렸다고 뭐라하면 ‘알았어, 고칠께’하면 되고, 생각이 다르면 ‘그건 네 생각이고’하고 지나가면 된다.
 
물건을 만들면 불량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수백개를 만들어도 불량이 나오고 수만개를 만들어도 불량이 나온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에서 만들어도 불량하나 없이 완벽한 제품이 나올 수는 없다. 그걸 이루어야 한다고 하면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지구의 환경은 완벽할지 모르나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찬찬히 뜯어볼 것도 없이 누구나 여린 구석이 있고, 누구나 강한 구석이 있고,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잘 하는 것이라도 태어나면서 잘하는 것은 없다. 다 거기에 맞게 연습하고 자꾸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툴 때가 있게 마련이다. 피나는 연습을 해서 정말 아주 잘하게 되었다고 해도,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김연아도 피겨스케이팅의 모든 동작을 언제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우리가 김연아가 엉덩방아찢는 모습을 못보아야 하지만, 지난 번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에 연습하는 것을 보면 그녀도 여전히 엉덩방아를 찢더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구선수도 여전히 스트라이크 아웃당한다.
 
얼마 전에 코트라에서 요청한 자료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자료를 담당했던 여직원이 나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 ‘사장님, 띠어쓰기하고 맞춤법을 신경써주세요!’ 책을 10권 넘게 쓴 내가 코트라 신입사원에게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하기를 ‘나도 한다고 하지만 내가 국어를 배울 때하고 지금하고는 많이 바뀌었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쓸테니 그런 교정은 편집하시는 분께 맡겨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손을 보게 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책을 낼 때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서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맞게 쓰되 나머지는 편집자에게 맡기면 된다. 그걸 일반인들이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지난 번에는 글을 썼는 데 누가 맞춤법을 지적하면서 ‘자꾸 틀리시네요’라고 하길래 ‘그 글을 쓰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보다 일단 써놓고 나중에 고치는 게 나을 것같아서 우선 스마트폰으로 올리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해가는 방식을 좋아 합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남 지적하다가 볼 일 못거나 남에게 밉보이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나는 ‘남에게 허구헌 날 지적받는 스타일’이다. 일이란 원래 틀어지게 되어있다. 양말 공장을 해보았지만 공장이 제대로 굴러가는 적이 없고, 불량이 안난 적이 없고, 바이어에게 클레임도 일상적으로 걸린다. 날씨라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기계에서 불완전하게 꼬여진 면이라는 실을 가지고 만든 양말이다. 완전할 수가 없는 게 사람이 만든 물건이다. 그래서 클레임은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이어나 소비자에게 오는 클레임의 99%는 ‘앞으로 잘 하자!’로 끝난다. 클레임이 왔다고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남들이 보면 무역에서 클레임걸렸다고 하면 큰 일이 난 줄 알지만 장사꾼에게 클레임이란 수시로 걸리는 감기같은 것이다. 아니 감기는 1년에 한두번이지만 클레임은 더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클레임이 없으면 또 발전도 없다. 클레임의 99.9%는 파는 사람 잘못이다. 그럼 바이어에게 ‘미안해, 이 번 불량은 다음에 몇 켤레 더 줄게. 그리고 다음부터는 더 잘할께’라고 하면 대부분 끝난다. 소비자와의 문제도 대체로 그렇게 끝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봐야 뻔한 결론이다. 그리고 양말은 더 잘 만들면 된다. 그럼 바이어가 용서해준다.
 
내가 쓰는 글도 그렇다. 누가 지적하면 내가 틀린 게 맞다. 맞춤법이 틀리고, 띄어쓰기 틀리고 앞 뒤 문맥이 연결이 안될 때가 많다. 글의 시작과 결말이 전혀 다를 때도 있다. 처음에는 ‘홍재화 좋은 놈’이라고 쓰기 시작했는 데, 나중에 결론을 보니 ‘홍재화 좋지 않은 사람’으로 끝나기도 한다. 글이라는 게 쓰기 시작할 때는 머리로 쓰지만 조금만 지나가면 손가락이 지멋대로 써나간다. 분명히 꽤 근거있게 여러 가지 증거들을 사용하면 썼다고 생각했는 데 그 증거 자체가 잘못될 때도 있고, 증거들이 서로 모순될 때도 있다. 그런 걸 이야기하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한다. 내가 만들어 수출하는 양말도 클레임 때문에 품질이 많이 좋아지고 새로운 제품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게 전체적으로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가져왔다. 글도 그런 지적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내 글의 약점을 알게된다. 그 것에 대하여는 오히려 말을 해주는 사람을 고마워하자. 물론 호의를 가지고 내가 섭섭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말하는 사람에 한해서. 남들 앞에서 자기 잘난 척하기 위하여 그냥 까대는 사람은 밉다. 미운 사람은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처럼 글을 형식이나 문법같은 것을 가지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면 안된다’, ‘생각을 그렇게 고루하게 하지말고 좀 세상에 맞게 바꿔라’, ‘씰데없는 글이나 쓰지 말고 좀 생산성이 있는 일이나 해라’...... 등등. 아니면 ‘한국은 이래서 안되고, 진보는 이래서 안된고, 보수는 저래서 안되고, 기독교 신자에게는 신이 존재해?라고 묻고, 불교 신자에게 돌덩어리에 절하면 문제가 해결되?’라고 물으면서 시비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설령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하고 다르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분명있다. 물론 그 사람이 토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여기고,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면서 말을 거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말걸어 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오래 한다고 해서, 논쟁을 오래 한다고 해서 서로가 설득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세상을 보는 자체가 틀리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생각의 프레임을 걸어놓고 듣고 보고 쓰기 때문이다. 똑같은 Fact, 사실, 명백한 현상을 보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틀리게 해석한다. 지금 내 글을 보고도 ‘역시 홍재화 글은 재미있다, 유익하다, 그럴 만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홍재화 개 글은 도대체 되먹지 않았어!’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도 ‘그 사람은 되먹지 않았어’라고 무시하고 웃으며 넘어가면 된다. 세상에 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웃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희희비비하다가는 제 명에 못산다. 열심히 쓴 글이 남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도 남들이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훠어어얼씬 더 많다. 아무리 못써도 사람 앞에다 놓고 ‘못썼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에 ‘재미있다. 공감이 간다,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같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내 글가지고 남들이 뭐라는 것을 겁내지 말자. 그런 사람 한 명이면, 칭찬하고 공감을 표시해주는 사람이 100명이다. 때로는 악플러도 같이 공감하고 싶다는 표현이 서툴러서 본의아니게 악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내 글이 틀리고 잘못되어 누가 뭐라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속으로는 ‘흠~ 나도 이제는 꽤 뻔뻔해졌네, 잘했어, 홍재화!’라며 나를 칭찬하고 그런 일을 넘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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