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일 토요일

글쓰기, 소리내어 읽을 때 편하면 됩니다

소리내어 읽을 때 편하면 됩니다
 
성북천의 아침
 
먹을 게 있을까 싶은 개천에서 오리는 살아가고,
먹을 게 있을까 싶은 세상에서 사람은 살아간다.
 
 
 
 
 
 

 
 
 
 
 
내 블로그에 자주 올리는 글이 있습니다. ‘성북천의 사계라고 합니다. 우리 동네를 흐르는 성북천이라는 개천이 있고, 그 위를 용문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지요. 주로 그 다리의 주변에서 느끼는 감상을 적는 글입니다. 그런데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행으로 쓰던 관계없이 글자의 숫자를 맞추어 적는데, 벌써 1년 넘게 쓰고 지금까지 거의 200개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쓸 줄 몰랐습니다. 글의 숫자를 맞추어 몇 행을 쓰는 게 쉬우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성북천이라는 하나의 소재, 그 것도 용문교 주변에서 내가 그 곳을 지날 때 느끼는 순간적인 느낌을 적을 소재가 금방 바닥이 날 줄 알았거든요. 생각보다 숫자를 맞추어 쓰는 게 어렵지 않았고, 쓰다 보니 한 두 행도 겨우 쓰던 실력이 대 여섯행도 써지던군요. 제가 대견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시를 쓸려고 쓰는 것은 아니고, 내 글에 리듬감을 주기 위한 글쓰기 연습입니다.
 
묵독은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어요
내용이 어렵지 않은 글인데 잘 읽혀나가지 않는 글이 있습니다. 반면에 술술 읽혀나간다는 글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면 술술 읽혀나가는 글이 좋지요. 글을 소리내어 읽는 것을 음독이라 하고 소리내어 읽지 않는 것을 묵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독서의 세계에서 묵독을 한 것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최근의 일이지요.
현재는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규범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커다랗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규범이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인도 속으로만 책을 읽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이런 독서 태도는 부차적이었다... 고대에는 커다란 소리를 내서, 혹은 최소한 낮은 소리라도 내면서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 주변에서 놀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독서가 소리 내어 읽는 독서에서 해방된 것은 처음에는 필사 수도사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독서법은 나중에 대학의 학자와 교양 있는 귀족에게 옮아갔으며, 문맹 퇴치의 진전과 함께 점차 다른 계층으로까지 아주 서서히 퍼져 나갔다.” (책읽는 여자, 슈테판 볼만)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도 공자왈 맹자왈하며 소리내어 읽기를 하였지요. 아마 근대이후에나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일반화되었을걸요.
 
즐기기 위한 독서는 리듬감을 중시합니다
책을 빨리 읽는 방법 중에 묵독이 있고, 묵독은 눈으로만, 문장을 통째로 읽는 방법도 있다지만 사람이 디지털로 된 기계가 아닌 흐름이 끊기지 않고 리듬을 타는 아날로그입니다. 전체 흐름을 타지 않고 딱딱 끊어지게 읽을 수있게 생긴 동물은 아닙니다. 물론 상당한 훈련을 거치면 불가능할 것이야 없겠지만, 책이란 읽기 위하여 읽는 게 아닙니다. 즐기면서 내 삶에 도움을 받기 위하여 읽는 건데, 그걸 무시하면 안되지요. 빨리 읽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잘 읽고 재미있게 읽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야 책읽기에 지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즐기며 읽기 위하여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합니다. 사람은 음독이든, 속독이든 간에 읽으면 머릿 속에서는 하나하나 읽게 됩니다. 결국 소리내지 않는 음독으로 사람들은 읽는 것이지요. 시나 시조도 역시 리듬을 중요시하지요. 겉으로 드러난 리듬은 운율,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리듬이 있는 글을 내재율이라고 하지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위의 시처럼 노래로 불려지는 시들을 보면 글자 수가 일정하거나, 같은 단어가 반복되거나, 비슷한 자리에 같은 모음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위의 시도 보면 문장당 글자 수로는 3-4자를 넘지 않으면서 읽기에 편합니다. 물론 노래가 워낙 우리에게 익숙하여서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읽기에 좋으니까 음악으로 만들기도 좋았던 거지요. 좋은 시는 읽기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글에는 운율이라는 게 있지요. 운율이란 반복이나 규칙성을 통해서 리드미컬하게 읽히는 글입니다.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소리를 반복시키거나, 소리의 고저, 장단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시키지요. 그래서 시낭송을 할 때는 어울리는 음악과 같이 하지요, 같은 리듬을 타며 읽어나가는 겁니다. 마치 춤을 추며 노래하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글읽기에도 리듬을 타는 것은 사람은 심장의 박동이 리드미컬하기 때문이지요. 글쓰기에서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사항 중에 하나가 같은 단어의 반복이라고 합니다. 글에서 다양함을 주고 지루함을 주지 않게 함이지요. 하지만 전 같은 단어의 반복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항을 강조할 때는 더 자주 사용하지요. 반복하면 리듬이 생기거든요. 물론 어휘력이 부족해서 느낌이 다른 문장에도 같은 단어를 쓰면 곤란하겠지만, 필요하다면 같은 단어의 반복도 활용하면 좋을 때도 많아요. 그런 리듬을 타기 위한 글쓰기의 좋은 방법은 읽을 때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호흡이 가빠지거나 너무 짧아서 호흡이 탁탁 끊기지 않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좀 길다 싶으면 글 사이에 쉼표(,)를 넣지요. 때로는 너무 자주 넣는다는 편집자의 타박을 듣기도 합니다. 전 리듬을 타는 글이 바로 호흡을 타는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서 다 쓴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제가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 글은 내용도 좋지만, 읽을 때 술술 읽혀요. 그래서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지요, 그런 글을 쓰고 나면 제가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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